HOME | 판관공파 뉴스  
판관공파 뉴스
뿌리 게시판
선조의 金言
사 진
 
 
현재위치 : 홈 > 뿌리게시판 > 뿌리 게시판
 
판관공 기제문과 묘갈명 원문
조회 : 6319 (2008-01-27 19:43:13) 이름 : 박찬승

 

승모 대부님 낙람 선조에 대해서 많은 관심과 자료를 찾아 조사하신것 같아 참으로 고맙게 생각하며 문중에 앞날을 걱정하는 숨은 인재가 있다든 것을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묘갈명 기제문 원문을 찾아 논리 정연한 질문을 하신데 대하여 저같이 오랫동안 의문을 품고 고민 하신것 같아 지난일을 생각해보니 참으로 세상은 하루게 다르게 변하고 있다느것을 알겠습다.                                                               

왕조실록 승정원 일기 같은것을 찾아보고자 도서관에 찾아가 그많은 분량을 찾아 보던때를 생각해보면은 지금은 안방에 앉아 왕조실록 승정원일기 국조방목 삼화방목 국조인물고 영남인물고등 고서을 인터넷으로 열람할수 있으니 우리는 참으로 좋은세상에 살고있다는것을 알겠습니다.

안타까운것은 소고선조께서 찬하신 판관공 기제문 묘갈명도 원문을 제대로 보고 해석해 보았는지 알고싶고 책을 만들고 인터넷에 올릴때 원로들과 의논이라도 해보았는지 알고싶습니다. 기제문 해석에 판관공 문중사이트에 존고모라고 해석해 놓았는데 누가 이렇해 해놓왔는지 알고싶고 원문이 있는데 원문대로 해석을 아니하고 해석하는 사람마음대로 해석해 놓으니  한문     아는 사람들은 해석한사람에 실력을 의심치 아니할수 없으며 우리종중에 자존심에도 큰상처를 준다느것을 명심하셔야 할줄압니다.

소고선생 기제문 묘갈명은 몇백년전부터 공개된 것이고 경신보 세적편등 여러곳에 공개된 것인데 이것마져 제대로 알지 못하고 이번 판관공 homepage에 공개했다고 원망하고 있는것 같은데 그러면 판관공 싸이트는 누가 개설했으며 누가 엉터리 사실을 공개해 올려놓았는지 묻고싶습니다 .

그리고 덕동실기 만들때 안동임사록등 왕조실기를 찾을때 참여하신걸로 듣고있는 원로종중 간부께 작년 대종회때도 낙람실기는 잘못됐다고 말했고 몇몇 원로들에게도 말했으나 지금까지 그냥 두고있으니 모든일은 잘못하면은 아무것도 아니한것 보다 못한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명심하시고 모든일을 추진하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얼마전에 안동판관공 시제 참석했다가 종중간부라는 사람이 제가 도유사님께 전화를 해서 한글로 세보를 하자고 했다는데 나는 도유사전화번호도 모르고 도유사 박준서씨에게 전화한 사실도 없습니다. 그리고 종중사이트에 한글로 족보를 하자고 했다고 음해 하는데 제가 올린글은 모두 그냥 그대로 있으니 모든 문중사람들은 제글을 종중 사이트에 보시기 바랍니다

이제는 늙어 곧죽을 사람들 위주로  족보       만들지 말고 앞으로 젊은사람들에 의견을 존중해서 세보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나는 한문 세대도 아니고 국문세대도 아닙니다. 한문으로 족보를 하자는 사람들이 경외백숙(京外伯叔)을 서울에 외백숙이라고 해석하고 아선(我先)을 선조라고 해놓아 시조선조시비에 판관공 전문중사람들을 식자들이 비웃게 만들었으니 얼마나 모든일을 조심하고 신중히 대처해야 할줄로 생각합니다.

경신보 세적편을 살펴보니 우리문중뿐만 아니라 다른문중것도 우리보다 더 잘못된것이 많으며 참으로 한심한것이 많습니다. 조상산소를 잊어버린것도 비일비재하고 방조 생년졸년이 없는 방조가 많으니 그러면 기제사도 않지냈다고 볼수밖에없고 판관공같이 고아가된 아들이라 관계없이 조상에 대한 향념이 없다고 결론지을수 밖에 없습니다. 족보하기전에 세적편부터 다시 정리해야 할것같고 많은돈과 노력으로   세적편으로 그런식으로 해놓으면 않하는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됨

판관공 기제문은 1571년 소고선조 55세때 황해도 관찰사 발령을 받고 종2품이상이면은 귀현으로 그조상 3대 추증받고 고양 지나다가 묘소를 처음 찾아가 기제문을 지움

귀현은 훌륭한 자손을 두었다고 부.조.증조부 삼대 추증벼슬과 모 조모 증조모에도 동시에 추증벼슬을 내림

묘갈명은 1979년 63세때 기묘년 선조 12년 8월 여주목사때 비석을 세웠다고 함 9월에 세웠다는 기록도 있으나 확실한것을 여주목사때 비석을 세우고 고유함 묘갈명에도 우리집에는 유씨 족산이라고 기록 되어있는데 종중 사이트에는 족장이라고 하는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니 해석에 혼란을 가져온듯함 제생각은 족산이 맞는거 같고 이렇해 모든것을 잘못공개놓고 반박자료를 공개했다고 원망한다니 참으로 한심한 사람들으며 문중에 앞날이 걱정스럽습니다.그리고 문중사이트에 공개해놓은 문장이라도 제대로 검토해 보았는지 묻고싶고 많은 돈을 들여 만들거나 종중 홈페이지를 만들때면은 제대로 만들지 아니하면은 않만드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기제문 묘갈명 원문을 보고싶어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모든 문중사람들이 보시고 머리를 맞대고 사실확인하도록 노력합시다. 일전 우리주손 정우씨가 홍성에 가서 판관공 임사록을 찾아보자고해 홍성문화원에 연락하니 60년대에 홍선군청에 불이나 모든것이 소실되었다고 하고 규장각에가서 홍주목 관계에 대하여 조사하라고 하니 아는대로 시간을두고 다 방면으로 조사해봅시다.

판관공 기제문 묘갈명 승지공 기문은 저의직계선조들이 직접 친필로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판관공 기제문과 묘갈명은 여러곳에 해석문이 실려있음(경신보 세적편 판관공 종중홈페이지)이번제가 올려놓은 해석문등 많은곳에 있음 승지공 기문은 아직 해석문이 없으니 각자 해석해 보시고 우리 집에서 전에오는 기제문 묘갈명도 각자 해석해보기를 바람

그리고 승모씨께서는 서울 종친회 고양회가 있으니 꼭 참석을 부탁드립니다

인천우거에서 박찬승

   목록
 
copyright 2005 by 반남박씨 판관공파 종중 All rights reserved. www.bannam.or.kr     |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판관공파종회관 : 우)36100 경북 영주시 원당로 77 (영주동)
전 화 : (054) 637 - 5635 관리자메일: ab2314ab@hanmail.net (박학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