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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보 가로찬성 하는 개인적인 이유
조회 : 5885 (2009-04-26 20:42:20) 이름 : 박찬승

대동보 가로찬성 하는 개인적인  이유

먼저 대동보 실무을 맡아 묵묵히 일하시는 종친들에 노고를 깊이 감사드림니다 족보(族 譜) 를 하는 목적을 잋어버리고 무슨 세(勢)싸움 하는겄같아 참으로 실망을 금치못했습니다


세보 편찬위원회라고 모여 발의하고 회의 하고직접 표결한 간부라는 분들이 본인에 마음에

들지 않이 한다고 공개된 종중homepage를 두고 종중 간부들에게 뒤로 일부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아무겄도 모르고 있는 종인들에게 마치 도유사가 가로 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처럼

선전하고 찬승이가 도유사에게 전화 해서 국문으로 하자고 했다고 하니 참으로 기막힐 일임니다

심지어 대종중에서 무었을 얻어먹었는 냐고하는 우물안 개구리 같이 생긴 대로   행동하는 사람까지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자들이며 이런자가 문중에 있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말만하고

대종에 가서 별소리를 다하고 다닌다고 음해하는데 이런 자들 때문에 판관공 전체를 개똥박씨라고 욕먹게 한 자가 과연 종중 간부가 될 자격이 있는지 묻고싶습니다


그리고 족보가 마치 우리 전통 양식인양 알고 계시는데 한국 족보는 모두 중국 족보를 모방

한 겄임니다


처음 족보 임오보 발문 에도 중국 구양씨와 이씨족보 를 참고로 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구양씨란 구양순 당나라 서예가로 왕회지 왕헌지 부자에게 서예 를 배웠다고 알고 있고

지금도 서예 하시는 분들은 구성 궁체(九成 宮體)라고 하는명필 구양순 체를 공부 하고

있습니다    이씨란 당나라 왕족 이씨들을 말하는 겄임니다


그리고 구양수는 당송 문장 팔대가에 한사람으로 사천성 하남사람이며 지금 풍양현 영주

에서 은퇘한 호는 취웅 휘는 수 자는 영숙 시호는 문충(文忠)  52세때 쓴 추성부(秋聲賦)

예약론(禮樂論)이란 명문을 남기신 분이 십니다 북송 사람임


계해보(癸亥譜)서문을 쓰신 서계 방조 께서는 소(蘇)씨 족보 좋은 점을 참고햇다고 쓰여 있음 소명윤이란 지금도 중국에서는 이태백과 같이 유명하게 생각하는 소동파 에 아버지

호는 노천(老泉)휘는 소순(蘇洵)자는 소명윤(蘇明允)을 말하는 것임니다


호 소동파 휘 소식 자 자첨(子瞻) 동생 휘 소철과 3부자가 당송 문장 팔대가 로 명성(名聲)

을 날렸습니다 소명윤에 석종산 기(石鍾山記) 소동파에 그유명한 적벽부(赤壁賦)

취백당기(醉白堂記)동생 소철 에 소곡전(巢谷傳)할아버지 들이 정성 드려 써놓은 친필을

다시보니 밤도 깊었는데 숙연한 마음으로 나 위주로 엉터리 해석하다가 어려운 글자는 옥편을 찿아보아도 없고 옆에 참 선비들인 할아버지들이 옆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 어듸가시고 무식한 손자홀로 깊은밤에 옛날을 추억하고 있습니다.오늘도 잠을 못이룰것 같습니다.


중국은 큰나라입니다. 족보는 처음에는 왕족들에 가계를 만들어 오다가 귀현(貴顯)한 명사와 문인 무인등 유명한 사람에 가문 가게도가 나와 족보가 우후죽순처럼 나온것 같습니다.


족보새로하고 종던대로 하는것은 보기 좋고 과학적이라는 것은 다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분 나쁠 정도로 중국것을 모방 한것입니다

 분명 우리족보 임오보 계해보 서문에도 중국것을 참고 했다고 쓰여 있는데도 종전 것이 마치 우리전통 양식인양 선전 하시는데 이분들이 과연 7차 족보서문 이라도 제대로 읽어 보시고 경신보 을유보 족보라도 갗고 계시는지 저는 의심 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주에서 처음 발간한 임오보 가 1642년 지금부터 367년 전일임니다 우리가 참고 했다는

중국 구양씨 소명윤 족보는 약1000년전에 벌써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임니다

이것을 갗고 이런데도 알만한분도 이것이 전통 양식인양 알고 계시는데 저는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족보 새로하는 기회에 시간을 좀더 요여하더라도 우리 후손들에게 쓰기쉽게 보기좋게 우리족보를 만들어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제가 1995년 사업관계로 중국심장부 상해 그리고 강소성에서 몇 년 기거해 보았는데 여기는 중국 한족(漢族)에 오랜 본거지입니다. 중화(中華)란 중(中) 이란 세계에 가운데 중심지라고 생각하며 화(華)란 빛나는 문화란 뜻으로 주변국가가 한족자기내 글 자기내 문화 모든 것을 물러받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중국이 세계에 중심이 된다고 자부 하고있습니다.


강소성은 성도가 남경입니다. 남경은 명나라 수도이며 양자강 강 변으로 대다수가 한족들이 주로 사는 곳이며 강소성 절강성 상해는 예로부터 중국 인제가 제일 많이 난다고 한족들에 자부심이 대단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한족에 문화와 생활을 엿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명나라 왕족 주씨들에 서책과 중국 이름난 가문에 족보도 보았습니다. 남경 도서관 박물관에서 중국 문화도 접할수 있었는데 우리 문화란 대다수가 중국모방 문화라는 것을 처음알고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과거제도 지명 사람이름 성씨 학문 그리고 조선 중종때 정암 휘조광조 가 인제를 뽑는 현량과 과거제도는 우리 것인줄 알았는데 벌써 당나라 시대부터 시행하던 것이며 심지어 나관중에 소설 삼국지에서 과거시험 문제가 출제된것을 보았고 지금도 음참마속이니 백미니하는 고사성어를 쓰고 있습니다.


중국 사마천 생식기를 거세당해 가면서 쓴 사기는 삼국지를 읽지 아니한 사람과 수작을 하지 말라고 한 이야기 삼국지 100번 읽는것보다 사기를 한번 읽어보란 사기도 우리나라 중일연이 쓴 삼국유사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도 사마천 사기를 흉내 낸것을 알았습니다.


중국인들은 남은만(蠻) 북은 적(狄) 동은이(夷) 서는 흉(恟) 사방이 오랑케이며 미개한 금수와 같은 민족이며 모든 문화 학문사상이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족에 숨은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경계하고 주목해야 할 것이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바로 중국사람들에 숨은 침략정책이며 벌써 조선에 남북통일까지 멀리 본 정책입니다. 고구려 발해 역사는 중국 자기들 것이라고 역사를 왜곡 하고 심지어 일본 보수 우익인사 동경지사는 요즘도 공개적으로 북한과 중국을 통합하라고 망언을 서슴치 않습니다. 이것이 무슨뜻인지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대처해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 등소평에 의해서 서남공정(西南工程)은 오랜 독립국가인 티벳 영토와 문화 모든 것을 영원히 중국으로 종속 시키는 작업입니다. 티벳 문화는 우리와 같이 중국식 이름 모든 것이 중국문화를 모방한 것이며 얼마 남지 아니한 나이 많은 기성세대 이외에 젊은이들은

중국화 된것 같습니다.


90년대 서북공정(西北工程)은 위구르등 소수민족은 중화화 되었고 지금도 공작 진행중입니다.

남에  나라 주권을 뺐고 민족혼(魂)을 말살 하면 분명 큰 저항 있을것이고  서로가 피(血)를 볼것임니다

 


곡부공씨 족보를 10년간 수단하더니 우리나라도 공씨들이 공자 후손이라고 저명인사와 35,000명이 수단 했다고 들었고 세계에 공자 후손들이 200만이 넘는다고 하고 얼마전에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씨도 조상이 중국에서 간 인사라고 선전하는 신문을 읽은기억이 납니다.


저가 중국서본 족보가 우리집에 필사본 또 주손댁 필사본이 중국서 본 것과 비숫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판공파가 그당시는 8촌이내 이니 임오보 를 우리가첩과 세양공 댁

송곡 휘대하 방조 것을 보고 처음만들었다고 하니 그겄은 소고 선조 께서 중국 사신도 가시고 명나라 사신들과 접촉 하신 기록이 있습니다 소고 선조때부터 기록 하지 않이 하였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반남 선생 산소도 실전하고 판관공 산소도 실전 하다 십이 하고 호장공 이상 조상을 알지못해 자손으로 부그럽고 통한을 금치 못한다는 기록이 있음


그당시 소고 선조께서 조선 제일에 역관 홍순언을 데리고 중국사신 가시고 원접사 (명나라 사신을 맟이 하는 관리)에 착출된 기록이 있고 명나라 사신가셔서 명나라 구양씨 소명윤 족보를 구해 오시지 아니 하였나 상상해봅니다. 그리고 사신 가서 사신 서열을 바로 잡아 큰일을 하신기록있습니다


판관공이 소고종조부터 취수웅 육우당이 판관공파만 기록한것 같습니다. 대략 8촌이내에

가첩이니까 그렇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관 홍순언과 의성 허준은 적서 차별이 극심한 조선조에 서자로 태어나 허준은 동의보감

의방유치 의검 찰요등 많은 저서를 남겨 일본 중국까지 알려 졌으며 임진외란때 호성 공신으로 양평 군으로봉군 밭고 승록 대부 정 일품에 오르신분임니다


홍순언역시 조선제일에 통역관으로 유망한 대신도 해결못한 종계 무변 (이태조 이성계를 친원파 이인임 아들이라고 원한이 있는자가 허위로 만듬)사건을  해결 하고  임진외란 시 명나라 20만대군 구원병 을파병케 해 나라를구하고 많은 외교관계를 해걸함 결국 명나라는 7년 전쟁을돕다가 국력이약해져 청나라에 망했다고 저는생각하고 있음

홍순언은 그공으로 광국공신 당릉군으로 훈봉 자헌대부로 자손들은 대대로 양반대열에 올려 놓은 분입니다. 지금도 을지로 1가 롯데 호텔앞에 살던 집터가 표시되어 있습니다.이렇듯 아무리 어려운 환경속이라도 훌륭한 조상은 자손들에게 오랫동안 혜택을 준다는 사실은 허준과 홍순언은 증명하고 있습니다.홍순언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는 연려 슬기술 연암 열하 일기등 30여책에 소개 되있고 호방한 성격에 홍순언에 이야기는 시중 책방에도 있으니 젊은 사람들은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명문가란 우연이 아니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명문가에 문집 가훈 가정교육이 평범한 가문과 다르다는 것을 늦게 책을 보고 알았습니다. 어떠한 책을 예를 들면 한가문에 3대가 생원진사도 없으면은 사대부(양반)에서 탈락 상민이 된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렇치 아니하면은 15대까지 5명정도는 대과 아니면 생원진사라도 있어야 양반 행세를 했다고 합니다.


어떤 80세난 노인이 사마시 시험장에 나타나 이렇해 연로하신 분이 어찌 여기 오셨느냐고 시관이 물으니 나는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은 자손을 위해 생원이라도 죽기전에 한자리 하고 떠나야 된다고 한것을 읽고 자손을 위해 이런 조상도 있구나 하고 감명 받은 기억이 납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희생하는 것도 자손을 위함이며 정승판서인들 자기만 편하고 자기집 가문만 생각하고 일제에 아부해 부귀영화를 누린들 훌륭한 조상을 욕보이고 자손들도 설자리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보아왔습니다. 그레서 독립투사는 한사람이라도 더찿아 세적편에올리고자 함이며 젊은 사람들에귀감 되도록 하기위한목적 임니다


우리종중은 서계 선생에 이용 후생학(利用 厚生學) 연암에 실사구시(實事求是)환제 금릉위 개화사상은 혁신에 앞장선 우리 종족입니다.


이번기회에 우리 족보도 쓰기쉽게 보기 좋게 연구해서 새롭게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의무가 있으며 이제는 60년~70년에 한번 하든지 종약으로 정해야 할것같습니다.



선조 시조 시비도 서계방조 서문에도 호장공 위조(爲祖)란 분명 호장공을 시조로 기록하고 있고 주자대전에도 별자위조가 시조임 그런데도 예기 주자대전을 말씀하시는데 예기란 춘추전국시대 기원전 2500년전 공자 제자가 썻다고 하고 공자가 썼다가도 하나 확실한 것은 알수 없습니다.


예기란 진나라 진시황이 분서갱유(焚書坑儒) 분서(焚書)란 쓸떼없는 이론으로 시비하는 책들을 불속에 집어넣고 자기주장만 합리화하고 궤변만 늘어놓는 유학자 460명을 잡아 산채로 생매장한 사건을 말함 예기란 책도 분서중에 하나인데 한나라 학자가 타다남은 책을 주어 다시 쓰게한 책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두고 주자대전이니 예기가 어떻고 육우당 송곡이 어떻고 하니 육우당 직계후손으로 선조 시조 시비 처음부터    불쾌하게 생각했습니다.


임오보 한번도 보지못한 사람에 선조주장에 말만 듣고 종중간부란 분들이 부화뇌동해서 이러쿵저러쿵 하는것은 참으로 실망했습니다. 그리고 판관공 홈페이지에 올린 임오보도 지워버리고 하는 직계 후손도 있으니 이자들이 과연 종중 간부가 될 자격이 있는지 의심 스러우며 조상을 팔아 자기 이권을 챙기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않된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며칠쓴 남에글을 싹 지워버릴때는 괘씸한 마음은 지금도 분이 풀리지 않습니다.그것도 직계 선조가 해놓은것을 알지도 못하고 지우는 자가 있다니 참으로 한심하고 종중에 앞날이 걱정스럽습니다.


그리고 중국사람들도 어렵다고 쓰지않는 한문으로 앙고지사니 하는 어려운 말을쓰니 젊은사람들은 이게 무슨 중국말이냐고 묻고 조소 하는데도이것이 유식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니 참으로 한심스럽고 이분들이 어느나라 사람인지 묻고싶습니다.

반남봉현에 오래된 시조 비는 남곽공이 나주 목사로 가셔서 치석(治石) 하셨다는것을 어디서 본것같고 나주에는 호장공 묘입구등 여러곳에 시조라고 쓴 비석이 여러곳에 있는데도 호장공 시사참석이라도 한번 해보고 이런 주장을 하는지 알고 싶습니다.


과거 우리 역사를 되돌아 보면 영원한 평화란 없습니다.민족에 아픈과거를 쉽게 잃어 버리고 미래에 대해 대비 못한 민족은 과거보다 더아픈 시련을 격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몇번 망설이 다가     두서없이 생각나는 대로 쓰다보니 문맥도 맞지 않고    실례되는것도있는거 같으니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승지공 15세 때  존고모땰아 와다고 한 엉터리  조작 하는데 가담 하신 경북 지회장님  이젠해명 하셔야지 역사조작은범죄 행위 임니다     대동보 서문도 누가변조 하는지 원문과 대조해 보니 변조된 것이 잇습니다                


2009.4.26인천우거에서 박찬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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