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보 가로찬성 하는 개인적인 이유
먼저 대동보 실무을 맡아 묵묵히 일하시는 종친들에 노고를 깊이 감사드림니다 족보(族 譜) 를 하는 목적을 잋어버리고 무슨 세(勢)싸움 하는겄같아 참으로 실망을 금치못했습니다
세보 편찬위원회라고 모여 발의하고 회의 하고직접 표결한 간부라는 분들이 본인에 마음에
들지 않이 한다고 공개된 종중homepage를 두고 종중 간부들에게 뒤로 일부는 허위 사실을
유포해 아무겄도 모르고 있는 종인들에게 마치 도유사가 가로 하는 것으로 결정한 것처럼
선전하고 찬승이가 도유사에게 전화 해서 국문으로 하자고 했다고 하니 참으로 기막힐 일임니다
심지어 대종중에서 무었을 얻어먹었는 냐고하는 우물안 개구리 같이 생긴 대로 행동하는 사람까지 있으니 참으로 한심한자들이며 이런자가 문중에 있다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말만하고
대종에 가서 별소리를 다하고 다닌다고 음해하는데 이런 자들 때문에 판관공 전체를 개똥박씨라고 욕먹게 한 자가 과연 종중 간부가 될 자격이 있는지 묻고싶습니다
그리고 족보가 마치 우리 전통 양식인양 알고 계시는데 한국 족보는 모두 중국 족보를 모방
한 겄임니다
처음 족보 임오보 발문 에도 중국 구양씨와 이씨족보 를 참고로 했다고 쓰여 있습니다
구양씨란 구양순 당나라 서예가로 왕회지 왕헌지 부자에게 서예 를 배웠다고 알고 있고
지금도 서예 하시는 분들은 구성 궁체(九成 宮體)라고 하는명필 구양순 체를 공부 하고
있습니다 이씨란 당나라 왕족 이씨들을 말하는 겄임니다
그리고 구양수는 당송 문장 팔대가에 한사람으로 사천성 하남사람이며 지금 풍양현 영주
에서 은퇘한 호는 취웅 휘는 수 자는 영숙 시호는 문충(文忠) 52세때 쓴 추성부(秋聲賦)
예약론(禮樂論)이란 명문을 남기신 분이 십니다 북송 사람임
계해보(癸亥譜)서문을 쓰신 서계 방조 께서는 소(蘇)씨 족보 좋은 점을 참고햇다고 쓰여 있음 소명윤이란 지금도 중국에서는 이태백과 같이 유명하게 생각하는 소동파 에 아버지
호는 노천(老泉)휘는 소순(蘇洵)자는 소명윤(蘇明允)을 말하는 것임니다
호 소동파 휘 소식 자 자첨(子瞻) 동생 휘 소철과 3부자가 당송 문장 팔대가 로 명성(名聲)
을 날렸습니다 소명윤에 석종산 기(石鍾山記) 소동파에 그유명한 적벽부(赤壁賦)
취백당기(醉白堂記)동생 소철 에 소곡전(巢谷傳)할아버지 들이 정성 드려 써놓은 친필을
다시보니 밤도 깊었는데 숙연한 마음으로 나 위주로 엉터리 해석하다가 어려운 글자는 옥편을 찿아보아도 없고 옆에 참 선비들인 할아버지들이 옆에 계셨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다 어듸가시고 무식한 손자홀로 깊은밤에 옛날을 추억하고 있습니다.오늘도 잠을 못이룰것 같습니다.
중국은 큰나라입니다. 족보는 처음에는 왕족들에 가계를 만들어 오다가 귀현(貴顯)한 명사와 문인 무인등 유명한 사람에 가문 가게도가 나와 족보가 우후죽순처럼 나온것 같습니다.
족보새로하고 종던대로 하는것은 보기 좋고 과학적이라는 것은 다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분 나쁠 정도로 중국것을 모방 한것입니다
분명 우리족보 임오보 계해보 서문에도 중국것을 참고 했다고 쓰여 있는데도 종전 것이 마치 우리전통 양식인양 선전 하시는데 이분들이 과연 7차 족보서문 이라도 제대로 읽어 보시고 경신보 을유보 족보라도 갗고 계시는지 저는 의심 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영주에서 처음 발간한 임오보 가 1642년 지금부터 367년 전일임니다 우리가 참고 했다는
중국 구양씨 소명윤 족보는 약1000년전에 벌써 만들어져 있었다는 것임니다
이것을 갗고 이런데도 알만한분도 이것이 전통 양식인양 알고 계시는데 저는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족보 새로하는 기회에 시간을 좀더 요여하더라도 우리 후손들에게 쓰기쉽게 보기좋게 우리족보를 만들어 물려주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제가 1995년 사업관계로 중국심장부 상해 그리고 강소성에서 몇 년 기거해 보았는데 여기는 중국 한족(漢族)에 오랜 본거지입니다. 중화(中華)란 중(中) 이란 세계에 가운데 중심지라고 생각하며 화(華)란 빛나는 문화란 뜻으로 주변국가가 한족자기내 글 자기내 문화 모든 것을 물러받았다고 생각하며 다시 중국이 세계에 중심이 된다고 자부 하고있습니다.
강소성은 성도가 남경입니다. 남경은 명나라 수도이며 양자강 강 변으로 대다수가 한족들이 주로 사는 곳이며 강소성 절강성 상해는 예로부터 중국 인제가 제일 많이 난다고 한족들에 자부심이 대단한 곳입니다. 이곳에서 저는 한족에 문화와 생활을 엿볼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명나라 왕족 주씨들에 서책과 중국 이름난 가문에 족보도 보았습니다. 남경 도서관 박물관에서 중국 문화도 접할수 있었는데 우리 문화란 대다수가 중국모방 문화라는 것을 처음알고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과거제도 지명 사람이름 성씨 학문 그리고 조선 중종때 정암 휘조광조 가 인제를 뽑는 현량과 과거제도는 우리 것인줄 알았는데 벌써 당나라 시대부터 시행하던 것이며 심지어 나관중에 소설 삼국지에서 과거시험 문제가 출제된것을 보았고 지금도 음참마속이니 백미니하는 고사성어를 쓰고 있습니다.
중국 사마천 생식기를 거세당해 가면서 쓴 사기는 삼국지를 읽지 아니한 사람과 수작을 하지 말라고 한 이야기 삼국지 100번 읽는것보다 사기를 한번 읽어보란 사기도 우리나라 중일연이 쓴 삼국유사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도 사마천 사기를 흉내 낸것을 알았습니다.
중국인들은 남은만(蠻) 북은 적(狄) 동은이(夷) 서는 흉(恟) 사방이 오랑케이며 미개한 금수와 같은 민족이며 모든 문화 학문사상이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하고 한족에 숨은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입니다.
우리가 경계하고 주목해야 할 것이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동북공정(東北工程)이 바로 중국사람들에 숨은 침략정책이며 벌써 조선에 남북통일까지 멀리 본 정책입니다. 고구려 발해 역사는 중국 자기들 것이라고 역사를 왜곡 하고 심지어 일본 보수 우익인사 동경지사는 요즘도 공개적으로 북한과 중국을 통합하라고 망언을 서슴치 않습니다. 이것이 무슨뜻인지 우리는 깊이 생각하고 대처해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80년대 등소평에 의해서 서남공정(西南工程)은 오랜 독립국가인 티벳 영토와 문화 모든 것을 영원히 중국으로 종속 시키는 작업입니다. 티벳 문화는 우리와 같이 중국식 이름 모든 것이 중국문화를 모방한 것이며 얼마 남지 아니한 나이 많은 기성세대 이외에 젊은이들은
중국화 된것 같습니다.
90년대 서북공정(西北工程)은 위구르등 소수민족은 중화화 되었고 지금도 공작 진행중입니다.
남에 나라 주권을 뺐고 민족혼(魂)을 말살 하면 분명 큰 저항 있을것이고 서로가 피(血)를 볼것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