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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균(朴秉鈞) 교지 : 봉직랑(奉直郞) 사온서령 증(贈) 통훈대부(通訓大夫) 통예원(通禮院) 좌통예(左通禮) 융경(隆慶) 5(1571)년 7월 12일. | |
우리 반남박씨 판관공파의 파 선조는 판관공 휘(諱) 병균(秉鈞)이십니다. 판관공은 7세조 규(葵)의 4남5녀 중 둘째아들입니다. 비문 등의 기록에 “ 판관공께서 일찍이 음사(蔭仕)로 벼슬길에 나가셨으나 홍주판관 재임 중 불행하게도 시질(時疾)로 젊은 나이에 내외분이 일시에 졸(卒)하시고 ....”로 되어 있습니다. 소고공이 쓴 판관공 묘비글에 “ 공(公)은 현국(顯國)의 명가(名家)로서 조년(早年)에 관직(官職)을 지냈으니 언행(言行)에 반드시 가관(可觀) 할 바가 있을 것이나 상고(詳考)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일찍이 듣건데 공(公)의 부부(夫婦)가 일시(一時)에 요서(夭逝)하시니”라고 되어있습니다. 당시는 단종 손위(端宗 遜位 단종이 임금자리를 세조에게 물려주었던 일)와 세조 왕위찬탈 등으로 풍운정국이 파란중첩하며, 단종복위 운동 등으로 많은 신하가 피를 흘리던 때라 판관공의 돌아가신 원인을 추측할 뿐입니다. 당시의 홍주(洪州)는 지금의 충청남도 홍성군(洪城郡)입니다. 일찍이 돌아가심에 따라 판관공에 대한 생몰연대 등 기록이 너무 없어서 당시 조선시대의 역사적 상황을 기준으로 유추하여 앞 뒤 전후를 판단해 볼 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