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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58년 6월 28일 경북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입향 >

 

우리 판관공파는 9세조 좌부승지공 휘(諱) 박숙(1444-1526)을 특별히 낙남선조(落南 先祖)라고 합니다.
낙남(落南)이라는 말은 판관공의 아들 좌부승지공 박숙 선조께서 대대로 서울에 사시다가 15세 때(1458년) 경북 안동(安東)으로 내려온 역사적 사건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좌부승지공께서 안동으로 내려오신 역사는 우리 판관공파의 뚜렷한 파맥을 설명하는 핵심적인 사건입니다. 그 후 사림의 학풍이 번성하는 경북 북부지역(안동, 영주)에서 판관공파는 명문가로서 존경을 받으며 학자와 선비를 배출하는 등 큰 역할을 해 갑니다.  ‘낙남(落南)'은 서울기준으로 남쪽으로 내려감을 의미하는 통칭어입니다.

 

조선왕조실록
안동대도호부사 이중(李重)
1458년 6월28일

1458년 안동대도호부 수령임관록과 조선왕조실록(세조4년1458년 6월28일 7집274면)에 의하면 이중(李重)이 안동대도호부사로 부임을 합니다(좌부승지공 나이 15세). 이중(李重)은 낙남선조 좌부승지공의 존고모부(아버지의 고모부)입니다. 좌부승지공은 나이15세(1458년) 때 안동대도호부사로 부임하던 존고모부 이중(李重)을 따라 안동으로 내려와 능성구씨 집안에 결혼하고 안동시 와룡면 가구리 박곡(朴谷)에서 정착하게 됩니다.

좌부승지공 휘(諱)숙은 안동의 능성구씨(綾城具氏) 집안에 장가들어  세 아들 침(琛) 진(璡) 형(珩)과 2녀(二女)를 두었습니다. 소고공은 만년에 두 아들을 불러놓고 유언하던 자리에서 “우리 집안이 대대로 서울에서 살았는데 중간에 유리하다가 화산부(花山府:안동)에서 우거(寓居)하였다. 내 선군이 본군(영주)으로 이주....”라고 하면서 분명하게 판관공파의 내력을 아들에게 이야기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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