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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우리 증조부(曾祖父)는 선연 화벌(華閥) 탄생하사
가문의 불행으로 내외분이 요서(夭逝)하니
존고(尊姑)따라 낙향(落鄕)하여 안동(安東)에 터전잡고
4세에 이르러서 문호(門戶)가 벌어졌네.

시골 살어 멀고 먼데 막힌 산천 바라본다
외람이 여경(餘慶)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향념(向念)이 부족하여 성묘(省墓)가 천연(遷延)인데
3대의 추증(追贈)영광 구천까지 통하도다

이제야 배성(拜省)하니 봉분(封墳)이 형상 없고
유약한 부끄러움 통극(痛劇)이 자심이라
비박지수(菲薄之羞) 차려놓고 허물사죄 비옵나니

일찍이 은음(恩蔭)으로 오품벼슬 올랐는데
황구(黃口)의 고아들은 의지할데 전혀 없어
이로부터 자손 길러 점점성취 되었도다
조상 산소 생각하니 서울 서쪽 고양인데
잔손(孱孫)이 몽매(蒙昧)하여 전원(田園)에 박혔더니
소장(小壯)의 벼슬길이 출입에 구애(拘碍)되고
천은을 힘입음이 분외에 넘쳤는 듯
거듭 거듭 소명 받어 비감(悲感)에 얽매인다.

남에게 의탁(依託)하니 수호(守護)가 어렵도다
명춘(明春)을 기다려서 완전하게 보수하리
망극한 심중소회 선령은 살피소서

 

이글은 소고공(승임)이 1571년 황해도 감사가 되어 3대 추증의 영광을 받고 부임할 때 판관공 묘소를 지나며 치제(致祭)한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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