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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潘南朴氏 判官公派는 孤兒가 되신 承旨 公께서 十五세 의 어린 나이로 천리타향 嶺外로 落南하시어 綾城具氏에 장가들어 安東에 定着하심으로써嶺南人이 되었다.
公께서는 三 子二女를 生育하고 大耋의 天壽를 누리셨는데 文籍이없어 그 學德을 詳考 할 길은 없으나 留守 李浤(固城人) 등 安東지역 名士 十五인과 眞率稧를 結成하여 交遊한 記錄이 있다. 幽宅은 安東府 北쪽 德洞 坤坐의 언덕에 있으니 그 아래에 德洞齋가 있다.
承旨公께서 他界하신지 백 여 년 동안 齋宮이 없어 時享 때마다 불편을 堪耐하다가 英祖 丁巳年(一七三七)에 宗中 任員 여러분들의 勤苦로 講堂 八간 廚舍 九간이 창건되었다
그 후 십여 차에 걸쳐 講堂과 廚舍를 補修했으나 光復後 己酉年(一九六九)에 重修한 이래 去今 반세기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기와가 상하니 서까래가 썩고 기둥이 기울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形勢였다.
특히 壬戌年(一九八二)에 京畿道 高陽의 都市計劃으로 判官公 兩位의 墓所를 局內에 緬奉함으로써 判官公과 承旨公의 齋宮을 겸하여 名實相符한 우리 二萬여 判官公派 後孫의 마음의 故鄕이 되니 한시가 憫恾 할 지경이었다.
癸巳年(二○一三) 宗中總會에서 德洞齋를 重修하기로 의결하여 重修推進委員會를 결성하고 委員長에 贊極 都有司를 선임하여 사업을 추진하였다.
專門家에게 보였던바 서까래와 기와는 전부 새로 갈고 기둥도리 등 손상된 재목을 모두 새것으로 바꾸어야 하니 物力이 新築에 버금하였다.
財源은 三派의 모금과 先山 賣渡代金 安東市보조금 그리고 부족분은 爲先事業에 열성인 여러 宗賢들의 誠金으로 충당하였다.
공사 일정은 甲午年(二○一四) 十一월에 施工하여 두어 달 작업하다. 혹한으로 잠시 쉬고 乙未年 三월 하순에 공사를 재개하여 五월 중에 공사를 마쳤다.
財源조달은 贊極 都有司와 贊旭總務有司가 담당하였고 공사는 한진건설(元緖)이 맡았으며 담장과 門間공사의 財源조달과 役事 監董은 後任 推進委員長 興陽族祖의 勞苦가 많았다.
총 공사비 貳億貳千七百萬원의 大役事가 차질 없이 마무리 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宗賢들의 투철한 崇祖敦族의 정신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표한다.
모쪼록 面目을 一新한 承旨公墓碣과 德洞齋가 우리 判官公派 마음의 故鄕으로 변함없이 우뚝 솟은 兩白이 쉬지 않고 흐르는 洛水처럼 長久하기를 기원한다
宗嗣孫 天柱
都有司 贊極
乙未年(二○一五) 八월 後孫 贊洙 謹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