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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德洞齋 重修記

● 1771년 1차 중수부터 2005년 까지 10여 차례 重修와 수리를 거듭하였으나 300여년의 긴 세월을 이기지 못하여 기와가 상하고 서까래와 기둥이 썩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形勢였다.


● 2013년 3월 종중 총회에서 승지공 묘비가 風磨와 雨洗로 字劃이 磨耗되어 判讀이 不能하여 星州 昌緖씨가 1,000만원 單獨負擔으로 立石하다.

● 宗土, 先山, 垈地와 家屋이 타인 소유로 있어 2012년 종중으로 소유권을 등기 이전하여 2013년 3월 종중 총회에서 德洞齋를 중수할 것을 결의하였다.

● 2013년 9월 2일 1차 德洞齋重修推進委員會를 구성하여 회장에 都有司 贊極을 副會長에 憲緖, 星陽, 裕緖와 推進委員으로 司直公派 11명, 嘉善公派 5명, 參判公派 9명으로 모두 25인을 選任하였다.

● 德洞齋 重修와 承旨公 墓碣 豫算은 1억6천9백만원으로 안동시보조금 3천만원 성주 昌緖 1천만원 3파 모금 7천 만원 종토매각으로 7천만원을 2014년 1월 31일까지 모금하여 공사기간은 2014년 3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하기로 했다.

● 2014년 10월20일 안동시 옥동 989-7 한진건설(주) 대표 박원서와 덕동재 중수공사 일체를 1억 3천만원으로 계약을 체결하다

● 建築設計 미비로 遲延되어 2014년 11월에 着工하여 2015년 工事進行을 하던 중 5월 2차 重修推進委員會를 소집하여 후임으로 重修推進委員長에 興陽祖를 선임하였다.

● 강당은 완료하였으나 垣墻과 門間공사를 興陽祖가 발의하여 담장공사비를 종원들이 솔선하여 5천2백만원을 모금하여 담장과 문간공사를 8월에 완공하였다.

● 총모금액 2억2천7백만원으로 재사 중수 및 원장과 문간공사를 완공하여 2015년 11월7일 종원을 모시고 고유를 올려 德洞齋를 完成하게 되었다.   

 

2015년 11월 7일

宗中 總務有司 贊旭

 

 

承旨公墓道改碣 及 楸齋重修時 告由文

恭惟府君 釣爺孫曾 黃口孤兒 隨姑踰嶺

甥館綾城 鸞鵠鼎停 忠孝傳家 積善蔭功

以孫榮達 銀臺推贈 豊富福祿 陰宅五龍

六友誠孝 始竪珉貞 壬午改碣 七旬歲經

字畫淺刻 苔蝕漫漶 學習不古 解讀難艱

衆意僉同 解析原文 召工伐石 完成數旬

埋舊新竪 墓儀一新 楸齋頹落 持撑極難

甲午總會 議決修繕 朽材改替 瓦葺NS全新

懸額德齋 堂宇輪奐 山屋丹粧 景觀最善

山精聚會 日益榮繁 捐玆吉日 歲事兼薦

伏惟尊靈 永保無愆

尙饗

승지공묘도개갈 급 추재중수시 고유문

 

생각하오니 부군께선 조은 할아버지 증손으로,

어릴 때 고아 되어 고모들 따라 낙남하셨네.

綾城具氏에 장가드시어 子弟가 三兄弟로다.

충효로 傳家하고 적선하신 공덕으로,

손자분이 영달하사 승지 증직 되셨도다.

복록이 풍부하사 오룡 쟁주 터 잡았네.

육우당의 효성으로 묘비 처음 세웠는데,

 

임오년에 개갈하니 七十年이 지났도다.

글자 새김 얕은데다 이끼가 먹어 희미하고,

학습 풍토 옛과 달라 해독하기 어렵다고,

여러 의논 함께 하여 원문을 풀어썼네.

石工시켜 돌 다듬어 數旬만에 완성하여,

옛돌 묻고 새돌 세우니 묘소 모습 새롭도다.

재실이 퇴락하여 지탱하기 극난하니.

갑오년 총회에서 수선을 의결했네.

썩은 재목 다 바꾸고 기와 또한 전부 갈고,

德洞齋 懸額하니 건물 雄大 美麗하네.

山所와 집 단장하니 景觀이 최선이고,

산의 정기 모여드니 나날이 번성하리.

좋은 날 가리어서 歲事 겸해 천신하오니.

尊靈께선 영원토록 탈 없이 保存하소

 

德洞齋重修記府北德洞負坤之原惟我落南 先祖承旨公衣冠之藏也其山下有墳菴曰德洞齋也寔創建於英廟丁巳以後累代重修修葺非一非再而最近者己酉則於今四十六年之間風雨所磨鳥鼠所啄柱傾礎埳將覆壓之患故甲午總會時議決修理椽瓦柱若干等朽材皆用新材物力猶爲新築能加也然繼述先志之義故定爲修理也費用則三派收錢六千七百萬圓山賣却代七千八百萬圓安東市補助金三千萬圓垣墻工事誠金 五千二百萬圓 合二億二千七百萬圓中 承旨公墓道改碣及門事營爲中許多用途四千萬圓他用則講堂修理之事可爲垣牆及門間築造費用全無試圖鳩財僉宗爭先出捐不日充當始役於甲午小春營之數朔適値臘天冰寒停役乙未正月下旬再開二月中旬蓋瓦下旬溫突及石築塗壁三月下旬工竣墓道亦改碣山屋一新是非 先祖蔭佑之效耶噫乎府君之一生推想則早失怙恃孑孑單身千里他鄕落南以來光復後辛酉判官公墓所都市計劃編入局內虎脈寅坐移窆雖五百餘歲之後兩代位一山同麓神理之通感天倫之順理生時之情況則無依無托由來文蹟蕩然無徵而只有鄕中諸賢結眞率 稧帖傳來者知 先祖友善之盛事也俗云福人逢吉地則 先祖衣冠之藏五龍弄珠之明堂則積德餘韻之可徵者也甲午小春初旬有司會席囑余監董之役余於老廢不堪當固辭不獲猶爲營事都有司贊極總務有司贊旭甫極力周旋之澤也而自玆以徃洛水龍山流峙之無窮云爾

宗嗣孫 天柱

                                         都有司 贊極

                             歲乙未立夏節 十四代孫 興陽 敬識

 

우리 潘南朴氏 判官公派는 孤兒가 되신 承旨 公께서 十五세 의 어린 나이로 천리타향 嶺外로 落南하시어 綾城具氏에 장가들어 安東에 定着하심으로써嶺南人이 되었다.

公께서는 三 子二女를 生育하고 大耋의 天壽를 누리셨는데 文籍이없어 그 學德을 詳考 할 길은 없으나 留守 李浤(固城人) 등 安東지역 名士 十五인과 眞率稧를 結成하여 交遊한 記錄이 있다. 幽宅은 安東府 北쪽 德洞 坤坐의 언덕에 있으니 그 아래에 德洞齋가 있다.

承旨公께서 他界하신지 백 여 년 동안 齋宮이 없어 時享 때마다 불편을 堪耐하다가 英祖 丁巳年(一七三七)에 宗中 任員 여러분들의 勤苦로 講堂 八간 廚舍 九간이 창건되었다

그 후 십여 차에 걸쳐 講堂과 廚舍를 補修했으나 光復後 己酉年(一九六九)에 重修한 이래 去今 반세기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여 기와가 상하니 서까래가 썩고 기둥이 기울어 금방이라도 무너질 形勢였다.

특히 壬戌年(一九八二)에 京畿道 高陽의 都市計劃으로 判官公 兩位의 墓所를 局內에 緬奉함으로써 判官公과 承旨公의 齋宮을 겸하여 名實相符한 우리 二萬여 判官公派 後孫의 마음의 故鄕이 되니 한시가 憫恾 할 지경이었다.

癸巳年(二○一三) 宗中總會에서 德洞齋를 重修하기로 의결하여 重修推進委員會를 결성하고 委員長에 贊極 都有司를 선임하여 사업을 추진하였다.

專門家에게 보였던바 서까래와 기와는 전부 새로 갈고 기둥도리 등 손상된 재목을 모두 새것으로 바꾸어야 하니 物力이 新築에 버금하였다.

財源은 三派의 모금과 先山 賣渡代金 安東市보조금 그리고 부족분은 爲先事業에 열성인 여러 宗賢들의 誠金으로 충당하였다.

공사 일정은 甲午年(二○一四) 十一월에 施工하여 두어 달 작업하다. 혹한으로 잠시 쉬고 乙未年 三월 하순에 공사를 재개하여 五월 중에 공사를 마쳤다.

財源조달은 贊極 都有司와 贊旭總務有司가 담당하였고 공사는 한진건설(元緖)이 맡았으며 담장과 門間공사의 財源조달과 役事 監董은 後任 推進委員長 興陽族祖의 勞苦가 많았다.

총 공사비 貳億貳千七百萬원의 大役事가 차질 없이 마무리 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宗賢들의 투철한 崇祖敦族의 정신이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뜻을 표한다.

모쪼록 面目을 一新한 承旨公墓碣과 德洞齋가 우리 判官公派 마음의 故鄕으로 변함없이 우뚝 솟은 兩白이 쉬지 않고 흐르는 洛水처럼 長久하기를 기원한다

宗嗣孫 天柱

都有司 贊極

乙未年(二○一五) 八월 後孫 贊洙 謹記

 
덕동재사.jpg
 懸額 贊旭 書

덕동재2.jpg

                               새롭게 중수한 덕동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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