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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상들께서 후세에 베풀어 놓으신 존귀하신 유산을 후손들이 외면하다싶이하는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세계 만방이 흠모하고 있는 이 혈연지보의 유물을 후손들은 자손 만대에 전할 의무감을 가져야 할 줄 압니다. 우리 시조이신 호장공의 숭고하신 덕화로 홍업(鴻業)을 경륜(經綸)하신지 어언 600여년이 되는 오늘날 그 음덕으로 되신 것은 또한 시조음덕의 증거라 하겠습니다. 이에 이어서 우리 반남박씨는 반남현에 기원으로 려말 문정공(尙衷5세)의 도덕충 절을 비롯해서 국초 평도공(은 6세) 할아버지의 창업으로 우리 박씨의 시조가 되심에 자손이 방방곡곡에 산재하야 각 파조가 되셨으며 우리 파조는 판관공 (병균 8세)이신데 자제이신 승지공(숙 9세)께옵서 고부림양군(姑夫林陽君)과 동시에 영하(嶺下: 안동으로 남하)하신이 그 영산(嶺山)은 태소양백산(太小兩 白山)이라 . 그 지운을 받은 사직공참판공 양파 자손이 영주를 기지(基地)로 마련하시고 역대는 거금 400여년을 지나는 사이 우리 성이 현조가 되시와 문호 개방에 빛나는 우리 성(姓)을 영주 거족이라 칭하며 그 후대연승하여 문무대소효행문장을 위시하여 음과수직이 부지기 수로 400년의 문호를 보장하였음은 실로 자랑스러운 음덕을 어찌 꺼릴 수 있으리오. 금반(今般) 파보는 신해 여름 조은(釣隱)선조개갈(改碣)과 판관공재사건립추진위원회도유사이신 족숙필양 씨 발의로 각 임원이 성금 모집을 위하여 각지 촌촌방문하여 양 선조위선사업에 대성과를 거양하였으며 따라서 자손마다 원하는 바 대보(大譜)는 일군봉직 자1,2첩에 불과하니 차제 조상 분묘와 조상 대수를 대다수가 모름으로 문회의 여러 의견에 따라 종 다수결의 하여 사업을 추진토록 제의가 있어 임자 6월 총회시에 만장 일치 가결하였다.
또, 3년간 수단 임원의 노고로 각 파가 다 입단되어 편보되었으나 중파는 수몰지구로 인하여 누락되었기 통탄을 금치 못한다. 각 집마다 1첩씩 보관하시면 자손 만대에 보감이 되고 우리 반양세덕으로 자손이 길이 백만세 천억하고 길이 천만세여여로 대동단결하여 피로 맺은 정을 등한시 하지 말것을 부탁하고 끝을 맺는다. 본보 수단 정비에 태서(台緖)군의 노고와 협조하여 주신 제 종친들에게 감사를 드리는 바입니다.
갑인년(1974) 여름 판관공16대손 박승열 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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