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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로 반남박사에서의 명변(明辨)을 생각하면서 우리 반남박성은 호장공을 비롯해서 그 자손들이 대단하게 번창하게 하였는데 고려조부터 조선조까지의 천년동안에 고관과 대작이 연속하고 명성과 덕행이 상전(相傳)해서 세상에 크게 나타나니 동방의 갑족이라고 하였다. 그 많은 자손들이 전국에 창성해서 엄청난 문세를 이룩하였다. 장능손위(莊陵遜位: 단종의 폐위)의 그 뒤에 부승지공(숙 9세)은 존고모부 안동부사 양성인 이중(李重)을 따라서 몽동(蒙童:어 린나이)으로 안동의 와룡면의 가구동으로 낙향을 하였다. 부승지공의 손자가 되는 소고(嘯皐)의 귀(貴)로 받은 좌부승지공의 3형제 가운데 장계형제(長季 兄弟)는 영주의 조제(助梯)와 조와(助臥)로 옮기게 되는데, 근 500년 전의 일이다. 모두 성품이 온화하고 순(順)해서 옛 장자의 가풍과 법도를 갖추었다고 하였다.
공자는 말하기를 화목해야 일가가 합하는 것이라 했는데 합족하는 도리는 족보를 만드는 것이 최선의 선결사항이다. 현재와 같이 험란한 시대에 정신을 바로 잡기가 어려운데 수보를 할 겨를이 없을 것이나 그 근본을 잃지 않은 일단으로 수단하는 것을 보고 만족하였는데 대한한 일이었다. 근래에 종중에서는 어렵게 의사를 수합해서 친목하는 방법으로의 세보를 간행하는 역사는 후일에 대동보를 기획할 때 유익할 것이니 얼마나 보탬이 될 것인가?
진실로 세보의 대의는 존조(尊祖)하고 경종(敬宗)하는 방편인데 종통을 존중하는 것은 일가를 모아서 백대라도 한 집과 같이 해서 살아서는 서로가 서로가 은애하고 죽으면 서로가 애통해서 노상에서의 사람들과는 달라서 선조와 자손에게 부끄럽지 않기를 바라는 것으로써 이제 영주의 곤계양파가 이 세보를 간편하는데 있어서 우리의 종사의 장래가 한한스럽지 않은 것이 아니나 부득이 해서 문내의 몇 현노분들이 선도하고 족질의 일서보가 성심으로 갈력해서 편의를 제공하고 시종수단과 정단은 족종 승필 춘서 관서 명서씨 등과 약임원제씨의 성력어린 현노로 정고가 끝나가고 있는 사정을 상세하게 전하는 바가 있어서 나는 경멸하하고 전열 함을 불고하고 우리 종사를 앞으로 더욱 익돈하게 하는데 서로가 노력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는 소원을 표시했더니 첨원이 옳은 의사라고 인지하여 주니 이와 같이 설명을 하고 경진년의 양파영주세보에 수문을 부치는 바이다.
경진(2000)년 승림, 도유사 태서 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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