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판관공파 뉴스  
선조의 유적
영주시 고랑골
영주시 무섬마을
안동시 은곡서당
영주시 귀내
영주시 한정마을
 
 

현재위치 : 홈 > 선조의 유적 > 영주시 귀내

 

위         치 : 경북 영주시 가흥2동 귀내(고현)
찾아가는길 : 영주시 서천교 인근

육우당(六友堂)은 소고공(朴承任)의 손자인 박회무(朴檜茂)선조가 노년에 지은 정자입니다. 현재 경북 영주시 가흥2동 귀내(古峴)에 있습니다. 육우당(六友堂)이 지을 당시의 위치는 귀내의 연못이 있는 자리이지만 지형의 변화로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육우당(六友堂)을 방문해 보고 관련기록을 보면 영주지역에서 활동했던 박회무(朴檜茂) 선조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박회무 선조는 반남박씨의 첫 족보(1642년 임오보 영주에서 발행)를 처음 발행하는데 큰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당시(조선중기)에는 최초의 사액서원인 소수서원등의 영향으로 경북영주에서 목판관련 인쇄술이 매우 발달되었다고 전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육우당(六友堂)은 소년시절(少年時節)에 벌써 성인(成人)의 기상(氣像)이 있었다고 합니다. 소고선생(嘯皐先生)이 일찍이 말하기를 “우리 집을 발전(發展)시킬 자(者)는 반드시 이 아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성장(成長)해서는 마음가짐이 직(直)하고 일에 대(對)해서는 경(敬)하며 행동(行動)이 담소(談笑)하는데 항상(恒常) 법도(法度)가 있었다고 기록은 전하고 있습니다.

 

육우당 박회무 선조는 이괄의 난(亂) 때와, 병자호란 때 의병(義兵)을 일으킨 의병장이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 병자(丙子 1636)년에는 겨울에 호병(胡兵)은 승승장구(乘勝長驅) 서울에 침입(侵入)하니 여러 골은 모두 무너지고 장수(將帥)와 수령(守令)들은 쫓겨 도망 했던바 공(公)은 의(義)를 주창(主唱)하여 근왕(勤王)하려고 눈물을 흘리면서 의병을 이끌고 서울로 출발(出發)하였다. 화의(和議)가 체결(締結)됐다는 소문(所聞)이 들리자 통곡(痛哭)을 하며 돌아와서 곡읍(哭泣)하고 주육(酒肉)을 먹지 않았다" 육우당의 뜰에는 송-회-매 죽-연-국(松檜梅竹蓮菊) 을 심고 학문과 후학양성에 노년을 보냈는데 여섯 친구라하여 「육우(六友)」를 당호(堂號)로 하였습니다.
위치는 영주에서 서천교를 건너지 않고 우측 구도로 순흥방향 길로 약 2km 지점에 마을이 있습니다.

영주를 방문하실 때 반남박씨 판관공파 종중으로 전화를 하시거나 홈페이지를 통하여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시면 친절하게 답하여 드리겠습니다. 유적지 방문을 할 때 종중의 안내를 통하여 영주(당시는 영천)에서 발달한 목판인쇄술에 관한 이야기, 반남박씨의 대동보 초보(첫 족보)를 영주에서 만들던 이야기, 병자호란 때 의병으로 참여했던 이야기, 퇴계학맥과 관련된 이야기 등의 반남박씨 판관공파의 내력(흘러온 역사)을 배울 수 있습니다.
반남박씨 판관공파 종중  054) 637 - 5635

 

 

 

copyright 2005 by 반남박씨 판관공파 종중 All rights reserved. www.bannam.or.kr     |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판관공파종회관 : 우)36100 경북 영주시 원당로 77 (영주동)
전 화 : (054) 637 - 5635 관리자메일: ab2314ab@hanmail.net (박학서)